• ‘올 때도 죽음의 관문에 들어오지 않았고/ 갈 때도 죽음의 관문을 벗어나지 않았도다/ 천지는 꿈꾸는 집이어니/ 우리 모두 꿈 속의 사람임을 깨달으라.’
  
  한국인의 의식구조를 꿰뚫었던 임종게. 그것은 단박의 깨우침 ‘돈오’(頓悟)였다. 이 땅의 민초들은 무너져 내리는 괴로움, 원통함을 한낱 꿈으로 돌리고 우뚝 일어서 내일을 열어온 것이다.
  
  이 임종게를 남기고 열반한 전 조계종 총무원장 월암당 정대(1937∼2003·사진) 스님의 추모 5주기를 맞아 육성법문집 ‘천지는 꿈꾸는 집이어니’(초담·사진 위)가 출간됐다.
  
  조계종 월암문도회가 펴낸 이 책에는 부처와 조사, 그 어느 것에도 걸림 없이 살았던 정대 스님의 대방무외(大方無外)한 삶이 펼쳐진다.
  
  정대 스님은 중앙종회 의장, 총무원장, 동국학원 이사장 등 종단의 요직을 두루 거쳐 사판승(事判僧)이 분명하지만, ‘깨달은 자’가 아니면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자유자재함을 지니고 있었기에 ‘사판의 선지식’으로 불렸다.
  
  월암은 생전에 불교계와 우리 사회에 잊을 수 없는 두 가지 업적을 남긴다.
  
  하나는 어지럽던 종단을 안정시키고 수십 년 숙원이던 총무원 청사(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의 초석을 다진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친으로부터 받은 유산 40억원을 몽땅 털어 장학재단인 ‘은정불교문화진흥원’(이하 진흥원)을 설립한 일이다.
  
  
  
  진흥원에서는 지금도 매년 100여명에게 1억7000만원가량의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장학금 수여식 장면을 지켜본 사람들은 학생, 독거노인 등 많은 이들이 다양한 명목으로 장학금을 받는 모습이 그렇게 감동적일 수 없다고 한다.
  
  스님은 당대 대표적 선지식으로 추앙받던 전강 선사를 만나 머리를 깎았다.
  
  전강 선사는 전북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군대에도 갔다 온 정대 스님이 위봉사로 찾아오자 10일 만에 산승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후 정대 스님은 신륵사와 용주사 주지를 맡아 특유의 친화력으로 가람의 선풍을 크게 진작시키는 등 종단에 끼친 업적은 지대하다.
  
  책에는 정대 스님의 법문이 깨달음, 수행, 회향이라는 3가지 주제로 엮여 있는데, 그야말로 ‘감로법문’이다. 또 각계각층 사람들의 인연담이 에피소드 형식으로 서술돼 있어 스님의 생생한 행장과 참모습을 만나게 한다.
  
  총무원장인 지관 스님은 책 서문에서 “선교이사(禪敎理事) 모두에 두루 회통하여 활활자재한 활구법문으로 열어 가신 삶이었다”고 말하고,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은 “반대파도 넉넉히 안을 수 있는 열린 마음을 지녔던 분”이라고 회상했다. 또 ‘만다라’의 소설가 김성동씨는 “선악미추와 시비분별이 끊어진 것 같은 자리에서 홀로 빙그레 웃음 짓고 계신 분”이라고 떠올렸고, 박지원 국회의원은 “2003년 서울구치소에 갇혔을 때 정대 스님이 면회와 따뜻하게 위로해 주시고 5000명분의 우유와 떡을 수형자들에게 넣어줘 눈물과 감동으로 나누어 먹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진흥원 이사장이자 정대 스님의 상좌인 자승 스님은 “풀 수 없는 문제를 잘 풀어주시고, 누구에게나 잘해 주려는 것이 몸에 밴 다정다감한 스승의 면모를 세상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고 출간 동기를 밝혔다.
  
  정성수 선임기자 hulk@segye.com

기사입력 2008.11.19 (수) 17:36, 최종수정 2008.11.20 (목) 09: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