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판승 명성 뒤 가려진 진면목 ‘천지는 꿈꾸는 집이어니’


총무원장을 역임한 정대스님은 현재 조계종 총무원 청사를 짓고, 자금 문제로 난항을 겪던 중앙승가대학 학사 이전을 마무리 짓는 등 종무행정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보여 ‘최고의 사판승’으로 불렸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선시(禪詩)를 즐겨 읽고 화두를 놓지 않은 납자였음이 가려져 있다. 입적한 뒤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진 연휴에 감춰져있던 면목이 제자들에 의해 조금씩 드러났다.

제자들은 생전 정대스님이 남긴 법어를 모아 추모집을 엮었다.

책 이름 <천지는 꿈꾸는 집이어니>(정대스님/ 초당) 는 열반송에서 한 구절을 빌었다.

‘올 때도 죽음의 관문에 들어오지 않았고/ 갈 때도 죽음의 관문을 벗어나지 않았도다/ 천지는 꿈꾸는 집이어니 /우리 모두 꿈속의 사람임을 깨달으라 (來不入死關 去不出死關 天地是夢國 但惺夢中人)라는 임종게를 남기고 2003년 12월 입적한 정대스님은 1937년 전북 전주 출신으로 전북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1962년 위봉산 위봉사에서 당대 최고의 선지식으로 추앙받던 전강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사진> 총무원장을 지낸 정대스님의 제자들이 스님의 생전 법문을 엮어 문집을 펴냈다. 불교신문 자료사진

출가 후 스승으로부터 판치생모(板齒生毛, 이빨에서 털이난 도리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받고 망월사 선원, 수덕사 등지에서 가행정진을 거듭, 견성을 체험한다. 수행정진 하는 중에 동산스님 효봉스님 춘성스님 등을 자주 방문 가르침을 받기도 했다. 이후 다 스러져간 사찰 중수에 나서 여주 신륵사, 수원 용주사 등을 현재의 모습으로 가람을 일신해 사판승으로도 인정을 받았다. 스님은 이후 총무원 국장 부장 등 소임과 중앙종회의원을 역임하며 종단 행정승으로 한 길을 걸어 조계종 총무원장 동국대 이사장을 끝으로 입적했다.

젊을 적 화두를 들고 생사를 초월한 정진력을 보인 뒤 오랜 세월 사판승으로 지냈지만 스님은 줄곧 화두를 놓지 않고 늘 선의 뜨락을 벗어나지 않았다. 이번에 제자들이 엮은 문집은 여주 신륵사 주지 용주사 주지를 역임할 때 스님이나 신도들을 대상으로 했던 상당법문만을 따로 간추린 것이다. 생전에 가려져 있던 스님의 또 다른 면목을 보여준다.

‘무식해지기 위한 공부’에서 스님은 “불교 공부, 특히 참선 공부는 많이 알려고 하는 공부가 아닙니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무식해지기 위한 공부지요, 지식이란 나누고 분별하고 시비하는 것이 본령이지만 무식은 그런 것을 모르니까 분별이 없어요. 이 때의 무식은 무식이 아니라 반야의 지혜를 말합니다”라고 하며 “불교 공부를 하는 이유는 오직 한가지 인생의 마지막 날이 닥칠 때 황망하지 않기 위함이니 그 때 후회하지 않으려면 아직 무릎에 힘이 남아 있고 정신이 온전할 때 화두를 참구하여 칠통을 타파하여야한다”고도 했다.

스님은 <금강경> <육조단경> <무문관> <벽암록> 등 선서들을 자유자재로 인용하며 여러 조사들의 일화와 공안을 들어 공부하는 방법과 불교의 진정한 의미, 그리고 수행을 하는 이유와 방법 참다운 삶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스님은 ‘수행의 목적’에 대해 “선수행은 잘못된 습관을 버리고 이원론적인 대립과 시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다. 시비와 분별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어느 정도 새로운 시각이 열린 사람이다. 새로운 시각이란 이원적 사유를 거치지 않은 직관적 통찰로 바라보는 세계”라고 일갈하며 화두를 드는 방법에 대해서는 “길고 짧고 좋고 싫다는 생각을 다 두드려 부셔서 한 조각이 되도록 하는 곧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야한다”고 가르치기도 했다.

문집에는 선법문 외에 ‘불교 지도자의 덕목 열가지’ ‘재가자의 정신’ 등 일상에관한내용도 일부 들어있으며 명진스님(봉은사 주지) 원택스님(전 총무원 총무부장), 소설가 김성동, 민주당 박지원 의원, 백도웅 목사 등 생전에 스님 가까이 있었던 지인들이 말하는 생전의 스님을 회상하는 글도 들어있어 스님의 감춰진 면목을 하나 더 볼 수 있다.

인연이 없다가 입적하기 전 동대이사장과 이사로 짧지만 아주 절친하게 지냈던 총무원장 지관스님이 특별히 서문을 쓰고 오랜 지기 백담사 무산스님이 추천사를 보탰다. 책 앞부분에 스님의 일생을 보여주는 글과 사진이 실려 있다.

오는 22일 수원 용주사에서 정대스님 5주기 추모법회에 이 책 봉정식을 하며 사진전도 연다.